추리소설의 간략한 역사
추리소설의 기원 : 인간에게는 본질적으로 추리능력이 있다. 고대부터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나 소설 속에 추리적인 요소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해결의 단서를 우리는 해결의 '실마리'라고 하는데, 이 말의 영어 단어 'CLUE'는 그레타 섬의 미궁에 빠진 테세우스(Theseus)가 미노타우로스(Minotauros-몸은 사람이고 머리는 소의 형상을 한 괴물)를 죽이고 무사히 탈출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미노스(Minos)의 딸 아리아드네(Ariadne)가 실뭉치를 주었다는 희랍신화에서 비롯된다.
추리소설의 탄생 : 19세기에는 문학이 상품화 되면서 문학 본래의 순수함에서 벗어나 대중의 기호에 영합하는 대중문학이 시작된 시대이다. 즉 소수를 위한 문학 대신에 다수를 위한 읽을거리라는 것이 성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순수문학의 쇠퇴는 동시에 대중문학의 발달을 의미하며, 또 하나의 문예부흥을 의미하는 것이 되었다. 이러한 시기인 1841년 미국에서 시인, 작가, 평론가이며 《그래함(Graham》의 편집장이던 에드가 앨런 포우가 범죄를 전문적으로 탐정하는 것을 줄거리로 하는 소설을 썼다. 이것이 인류 최초의 추리소설인 「모르그가의 살인사건」이다. 이것에 성공한 포우는 잇달아 「마리 로제의 수수께끼The Mystery of Marie Roget」(1842), 「황금벌레The Gold Bug」(1843), 「도난당한 편지The Purloined Letter」(1845)를 썼다. 이 네 편의 소설은 추리소설의 고전으로서, '범죄가 있고, 탐정이 있고, 범인을 체포한다'는 추리소설의 기본구조를 정립시켰다.
추리소설의 어머니 : 포우는 비록 4편의 추리소설밖에 남기지 못하고 40세를 일기로 사망했지만(1849) 추리소설의 선풍은 프랑스와 영국으로 파급되면서 발전해나갔다. 포우 다음으로 괄목할 만한 작가는 프랑스에서 나왔다. 「룰루즈 사건L' Affaire Lerouge」(1866), 「르콕 탐정Monsieur Lecoq」(1868) 등으로 잘 알려진 에밀 가보리오(Emile Gaboriau)이다. 그는 추리소설의 내용을 정교하고 복잡하게 함으로써 이를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포우가 추리소설을 탄생시킨 아버지라고 한다면 그는 이를 키운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추리소설의 선을 연장시켰다. 그는 13년간 21편의 추리소설을 쓴 다작가(多作家)인데다가 이 중에는 장편소설도 있어서 이 방면에 끼친 그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영국의 아더 코난 도일마저 그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평론가들이 보고 있을 정도다.
추리소설의 전성기를 누린 작가들 : 명탐정 손다이크 박사를 탄생시키고 법의학을 추리소설에 도입한 오스틴 프리맨, 변호사 출신의 명탐정 마틴 휴위트(Martin Hewitt)를 탄생시킨 기자 출신의 아더 모리슨(Athur Morrison), 과묵하고 근엄하며 무서운 탐정 대신에 유머러스한 탐정 유겐 발몽(Eugen Valmon)을 탄생시켜 추리소설에 새로운 스타일을 도입한 로버트 바(Robert Barr), 현장을 뛰어다니지 않고 보고서를 면밀히 분석하고 검토하는 것만으로도 단서를 찾아내는 '안락의자형 탐정'을 탄생시킨 바로네스 오르치(Baroness Orzy), 승려 탐정 브라운 신부(Father Brown)를 탄생시킨 길버트 케이 체스터튼(Gilbert K. Chesterton) 등은 추리소설의 전성기를 누린 작가들이다.
추리소설의 장편화 : 추리소설은 동기의 심리적 심층을 파헤쳐서, 유머와 애정관계와 자연묘사 등을 가미하고, 문장의 매력을 동원하여 좀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단편에 있어서도 취향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요약해서 말하면 순수추리소설이 아닌 추리적 흥미를 수반하는 소설로 하자는 것이다. 살인도 이전처럼 잔인하지 않고, 피해자도 이전처럼 무고하지 않고, 분위기도 이전처럼 음산하지 않으나 심리적으로는 훨씬 정교한 현실주의적 작품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독이 든 초콜릿 사건The Poisoned chocolates Case」(1929), 「제2의 총성The Second Shot」(1930) 등의 작가로 유명하며, 기자 출신이고, 영국의 탐정소설 작가 클럽의 사실상의 창설자인 안소니 버클리(Anthony Berkely)는 이 시대의 새로운 취향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플롯 중심의 순수, 단순 탐정소설의 시대는 지났다고 확신한다. 탐정소설은 탐정적 흥미와 범죄적 흥미를 결부시킨 소설, 독자의 관심을 수학보다 심리학으로 끌어들이는 소설로 발전하고 있다. 퍼즐의 요소는 살아 있지만 그것은 시간, 장소, 동기, 기회의 퍼즐로부터 성격의 퍼즐로 변하고 있다. 실제의 삶 속에서, 살인사건의 그늘에 숨어 있는 감정의 드라마와 심리적 갈등이 소설화될 가능성을 과거의 탐정소설은 무시하고 말았다."
최초의 추리소설 여류작가 : 추리소설의 역사상 최초의 여류작가는 미국의 안나 캐더린 그린(Anna Katharine Green, 1846∼1935)이었다. 90세라는 장수를 누린 그녀는 평생 동안 30여 편의 소설을 썼는데 대부분이 추리소설이었다. 그린이 추리소설을 쓰게 된 데에는 형사전문 변호사였던 친정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그녀의 작품 중에 특기할 만한 것이 없는 것은 아니나 작품의 내용 자체보다도 남성 전용으로 인식되었던 추리소설을 여성이 처음으로 썼다는 사실과 여탐정 바이올렛 스트레인지(Violet Strange)를 탄생시켰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정상급 추리소설 여류작가 : 아가사 크리스티가 탄생시킨 탐정 포와로(Hercule Polrot)는 여행을 좋아하여 여러 곳으로 돌아다닌다. 그래서 소설의 배경이 잘 변한다. 포와로 탐정은 '우연히' 사건이 일어난 곳에 나타난다. '우연의 일치'라는 수법은 작가들의 금기 사항이었지만 그녀는 알 바 아니라는 듯했다. 또 포와로가 아닌 다른 탐정을 쓰기도 했다. 크리스티는 자신의 사생활에 있어서도 엉뚱한 데가 있었다. 남편 크리스티(Archbold Christie) 대령과 이혼하기 1년 전인 1926년에 그녀는 갑자기 행방불명이 되었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고, 아마추어 탐정이 설쳤다. 온갖 제보가 들어왔지만 크리스티를 찾지 못했다. 이 사이에 신문들은 매일같이 그녀에 대한 기사를 썼고, 별로 인기가 없었던 그녀의 초기 작품들이 재출판되어 인기를 끌었다. 드디어, 그녀는 훗날 크리스티 대령의 두 번째 부인이 된 어느 여자의 이름으로 휴양지에 투숙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의사는 그녀가 건망증 환자라고 발표하고 이 사건은 끝났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그녀에 대한 독자의 관심이 더 높아지고 인기도 상승되었다. 이혼한 뒤에도 남편의 이름 크리스티를 그냥 작가명으로 썼다. 추리소설의 역사에 있어서 아가사 크리스티의 이름이 특기(特記)되는 것은 자유분망한 낭만주의적인 작품 내용 때문이기도 하지만 처음으로 정상급에 오른 여류작가라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 추리문학의 새로운 스타일 : 추리소설의 전성기는 영국에서 맞았지만 본격적으로 고전적, 정통적인 추리소설과는 현저하게 다른 새로운 스타일이 나타나기 시작한 곳은 추리소설의 종주국인 미국이었다. 추리소설의 새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새시대의 문을 연 사람은 반 다인이었다. 3년 동안 2천 권의 추리소설과 범죄소설을 읽은 그는 미국 추리소설에는 발전의 여지가 많다는 것을 감지했다. 그러나 반 다인은 종래의 추리소설을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킨 사람이었지 개혁시켜서 새로운 스타일을 탄생시킨 사람은 아니었다.
미국 추리문학의 개혁 : 미국 추리소설의 개혁은 사무엘 다쉴 하메트(Samuel Dashiell Hammett)에 의해 일어났다. 그는 1894년 메릴랜드에서 태어났다. 13세 때에 가세의 몰락으로 학교를 중퇴, 신문팔이, 부두인부, 철도인부, 가두 선전원, 화물 배달부 등을 전전하다가 사립탐정회사의 탐정으로 취직했다. 여기에서 공로를 세워 승진도 했다. 1차대전이 일어나자 그는 위생병으로 참전했다가 결핵에 감염되어 제대한다. 더 이상 탐정으로 활약할 수 없게 된 그는 그때부터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펄프 마켓(Pulp Market-한번 읽고 버리는 잡지)에 투고하는 정도였다. 그뒤 『피의 수확Red Harvest』(1929), 『말타의 매The Maltaese Falcon』(1930) 등에서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유리열쇠Glass Key』『그림자 없는 사나이The Thin Man』의 영화화로 일약 갑부가 되었다.
추리소설의 기원 : 인간에게는 본질적으로 추리능력이 있다. 고대부터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나 소설 속에 추리적인 요소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해결의 단서를 우리는 해결의 '실마리'라고 하는데, 이 말의 영어 단어 'CLUE'는 그레타 섬의 미궁에 빠진 테세우스(Theseus)가 미노타우로스(Minotauros-몸은 사람이고 머리는 소의 형상을 한 괴물)를 죽이고 무사히 탈출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미노스(Minos)의 딸 아리아드네(Ariadne)가 실뭉치를 주었다는 희랍신화에서 비롯된다.
추리소설의 탄생 : 19세기에는 문학이 상품화 되면서 문학 본래의 순수함에서 벗어나 대중의 기호에 영합하는 대중문학이 시작된 시대이다. 즉 소수를 위한 문학 대신에 다수를 위한 읽을거리라는 것이 성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순수문학의 쇠퇴는 동시에 대중문학의 발달을 의미하며, 또 하나의 문예부흥을 의미하는 것이 되었다. 이러한 시기인 1841년 미국에서 시인, 작가, 평론가이며 《그래함(Graham》의 편집장이던 에드가 앨런 포우가 범죄를 전문적으로 탐정하는 것을 줄거리로 하는 소설을 썼다. 이것이 인류 최초의 추리소설인 「모르그가의 살인사건」이다. 이것에 성공한 포우는 잇달아 「마리 로제의 수수께끼The Mystery of Marie Roget」(1842), 「황금벌레The Gold Bug」(1843), 「도난당한 편지The Purloined Letter」(1845)를 썼다. 이 네 편의 소설은 추리소설의 고전으로서, '범죄가 있고, 탐정이 있고, 범인을 체포한다'는 추리소설의 기본구조를 정립시켰다.
추리소설의 어머니 : 포우는 비록 4편의 추리소설밖에 남기지 못하고 40세를 일기로 사망했지만(1849) 추리소설의 선풍은 프랑스와 영국으로 파급되면서 발전해나갔다. 포우 다음으로 괄목할 만한 작가는 프랑스에서 나왔다. 「룰루즈 사건L' Affaire Lerouge」(1866), 「르콕 탐정Monsieur Lecoq」(1868) 등으로 잘 알려진 에밀 가보리오(Emile Gaboriau)이다. 그는 추리소설의 내용을 정교하고 복잡하게 함으로써 이를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포우가 추리소설을 탄생시킨 아버지라고 한다면 그는 이를 키운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추리소설의 선을 연장시켰다. 그는 13년간 21편의 추리소설을 쓴 다작가(多作家)인데다가 이 중에는 장편소설도 있어서 이 방면에 끼친 그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영국의 아더 코난 도일마저 그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평론가들이 보고 있을 정도다.
추리소설의 전성기를 누린 작가들 : 명탐정 손다이크 박사를 탄생시키고 법의학을 추리소설에 도입한 오스틴 프리맨, 변호사 출신의 명탐정 마틴 휴위트(Martin Hewitt)를 탄생시킨 기자 출신의 아더 모리슨(Athur Morrison), 과묵하고 근엄하며 무서운 탐정 대신에 유머러스한 탐정 유겐 발몽(Eugen Valmon)을 탄생시켜 추리소설에 새로운 스타일을 도입한 로버트 바(Robert Barr), 현장을 뛰어다니지 않고 보고서를 면밀히 분석하고 검토하는 것만으로도 단서를 찾아내는 '안락의자형 탐정'을 탄생시킨 바로네스 오르치(Baroness Orzy), 승려 탐정 브라운 신부(Father Brown)를 탄생시킨 길버트 케이 체스터튼(Gilbert K. Chesterton) 등은 추리소설의 전성기를 누린 작가들이다.
추리소설의 장편화 : 추리소설은 동기의 심리적 심층을 파헤쳐서, 유머와 애정관계와 자연묘사 등을 가미하고, 문장의 매력을 동원하여 좀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단편에 있어서도 취향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요약해서 말하면 순수추리소설이 아닌 추리적 흥미를 수반하는 소설로 하자는 것이다. 살인도 이전처럼 잔인하지 않고, 피해자도 이전처럼 무고하지 않고, 분위기도 이전처럼 음산하지 않으나 심리적으로는 훨씬 정교한 현실주의적 작품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독이 든 초콜릿 사건The Poisoned chocolates Case」(1929), 「제2의 총성The Second Shot」(1930) 등의 작가로 유명하며, 기자 출신이고, 영국의 탐정소설 작가 클럽의 사실상의 창설자인 안소니 버클리(Anthony Berkely)는 이 시대의 새로운 취향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플롯 중심의 순수, 단순 탐정소설의 시대는 지났다고 확신한다. 탐정소설은 탐정적 흥미와 범죄적 흥미를 결부시킨 소설, 독자의 관심을 수학보다 심리학으로 끌어들이는 소설로 발전하고 있다. 퍼즐의 요소는 살아 있지만 그것은 시간, 장소, 동기, 기회의 퍼즐로부터 성격의 퍼즐로 변하고 있다. 실제의 삶 속에서, 살인사건의 그늘에 숨어 있는 감정의 드라마와 심리적 갈등이 소설화될 가능성을 과거의 탐정소설은 무시하고 말았다."
최초의 추리소설 여류작가 : 추리소설의 역사상 최초의 여류작가는 미국의 안나 캐더린 그린(Anna Katharine Green, 1846∼1935)이었다. 90세라는 장수를 누린 그녀는 평생 동안 30여 편의 소설을 썼는데 대부분이 추리소설이었다. 그린이 추리소설을 쓰게 된 데에는 형사전문 변호사였던 친정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그녀의 작품 중에 특기할 만한 것이 없는 것은 아니나 작품의 내용 자체보다도 남성 전용으로 인식되었던 추리소설을 여성이 처음으로 썼다는 사실과 여탐정 바이올렛 스트레인지(Violet Strange)를 탄생시켰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정상급 추리소설 여류작가 : 아가사 크리스티가 탄생시킨 탐정 포와로(Hercule Polrot)는 여행을 좋아하여 여러 곳으로 돌아다닌다. 그래서 소설의 배경이 잘 변한다. 포와로 탐정은 '우연히' 사건이 일어난 곳에 나타난다. '우연의 일치'라는 수법은 작가들의 금기 사항이었지만 그녀는 알 바 아니라는 듯했다. 또 포와로가 아닌 다른 탐정을 쓰기도 했다. 크리스티는 자신의 사생활에 있어서도 엉뚱한 데가 있었다. 남편 크리스티(Archbold Christie) 대령과 이혼하기 1년 전인 1926년에 그녀는 갑자기 행방불명이 되었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고, 아마추어 탐정이 설쳤다. 온갖 제보가 들어왔지만 크리스티를 찾지 못했다. 이 사이에 신문들은 매일같이 그녀에 대한 기사를 썼고, 별로 인기가 없었던 그녀의 초기 작품들이 재출판되어 인기를 끌었다. 드디어, 그녀는 훗날 크리스티 대령의 두 번째 부인이 된 어느 여자의 이름으로 휴양지에 투숙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의사는 그녀가 건망증 환자라고 발표하고 이 사건은 끝났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그녀에 대한 독자의 관심이 더 높아지고 인기도 상승되었다. 이혼한 뒤에도 남편의 이름 크리스티를 그냥 작가명으로 썼다. 추리소설의 역사에 있어서 아가사 크리스티의 이름이 특기(特記)되는 것은 자유분망한 낭만주의적인 작품 내용 때문이기도 하지만 처음으로 정상급에 오른 여류작가라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 추리문학의 새로운 스타일 : 추리소설의 전성기는 영국에서 맞았지만 본격적으로 고전적, 정통적인 추리소설과는 현저하게 다른 새로운 스타일이 나타나기 시작한 곳은 추리소설의 종주국인 미국이었다. 추리소설의 새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새시대의 문을 연 사람은 반 다인이었다. 3년 동안 2천 권의 추리소설과 범죄소설을 읽은 그는 미국 추리소설에는 발전의 여지가 많다는 것을 감지했다. 그러나 반 다인은 종래의 추리소설을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킨 사람이었지 개혁시켜서 새로운 스타일을 탄생시킨 사람은 아니었다.
미국 추리문학의 개혁 : 미국 추리소설의 개혁은 사무엘 다쉴 하메트(Samuel Dashiell Hammett)에 의해 일어났다. 그는 1894년 메릴랜드에서 태어났다. 13세 때에 가세의 몰락으로 학교를 중퇴, 신문팔이, 부두인부, 철도인부, 가두 선전원, 화물 배달부 등을 전전하다가 사립탐정회사의 탐정으로 취직했다. 여기에서 공로를 세워 승진도 했다. 1차대전이 일어나자 그는 위생병으로 참전했다가 결핵에 감염되어 제대한다. 더 이상 탐정으로 활약할 수 없게 된 그는 그때부터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펄프 마켓(Pulp Market-한번 읽고 버리는 잡지)에 투고하는 정도였다. 그뒤 『피의 수확Red Harvest』(1929), 『말타의 매The Maltaese Falcon』(1930) 등에서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유리열쇠Glass Key』『그림자 없는 사나이The Thin Man』의 영화화로 일약 갑부가 되었다.